The Battle: Roar to Victory, 2019 戰鬪
< < 봉오동전투 예고편HD > >


< < 인기있는 한국영화 > >

각본: 천진우
촬영: 김영호
편집: 양진모
음악: 장영규
배급사: 쇼박스
제작: 빅스톤 픽처스, 더블유픽처스, 쇼박스
원신연 감독이 지휘제작하였던 영화로 1920년 실제 중국 지린 성에 있는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이 이끄는 한국 독립군들이 일본군과의 격렬한 교전 끝에 승리한다는 내용을 영화로 제작하였다.

그 외 출연배우들 :
박지환 : 아라요시 시게루 역
최유화 : 임자현 역
성유빈 : 개똥이 역
이재인 : 춘희 역
다이고 코타로 : 유키오 역
원풍연 : 이진성 역
양현민 : 아가리 역
홍상표 : 재수 역
원진 : 길산 역
정미남 : 해철부하 역
주광현 : 해철부하 역
이대광 : 해철부하 역
박도하 : 해철부하 역
박지열 : 해철부하 역
박야성 : 해철부하 역
박훈 : 장하포수 역
노재훈 : 장하포수 역
홍진기 : 장하포수 역
양정두 : 장하포수 역
정윤철 : 장하포수 역
백종승 : 겡게독립군 역
김규백 : 겡게독립군 역
이동용 : 장군 역
서정식 : 장군 역
고민시 : 화자 역
한국인 : 어린해철 역
곽예준 : 해철동생 역
김세한 : 어린장하 역
박승준 : 춘희동생 역
어주선 : 최 노인 역
김철윤 : 독립군징수대원 역
노시홍 : 정동성당신부
박영복 : 피난촌민 역
윤병희 : 피난촌민 역
윤종구 : 삼둔자촌장 역
이예지 : 삼둔자생존촌민 역
심소영 : 중국무당 역
강준석 : 촌민포로 역
김연 : 촌민포로 역
김승완 : 촌민포로 역
한도진 : 촌민포로 역
강신형 : 촌민포로 역
김경로 : 독립군포로대역
윤선용 : 낚시꾼 역
곽진석 : 호랑이대역
권성영 : 사토 역
손민호 : 겐쇼 역
전중용 : 정찰조장 역
염석무 : 월강추격대포수 역
유명훈 : 월강추격대조장 역
유경훈 : 월강추격대 통역병 역
강내균 : 월강추격대의무병 역
이관훈 : 척후기마병 역
오상윤 : 산포반장 / 남양수비대포로 역
최민식 : 홍범도 역 (특별출연)
박희순 : 독립군 포로 역 (특별출연)

Episode)) 개봉을 2일 앞둔 2019년 8월 5일에 봉오동 전투 촬영팀이 강원도 동강에서 서식하는 야생화인 할미꽃 자생지를 영화 촬영중에 훼손하였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제작사측은 영화촬영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서 부득이 자연을 훼손한 것에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올렸으며 대한민국 환경부와 해당 지자체 등에 벌금을 납부하였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원신연 감독은 한국경제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본인도 영화촬영 당시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하였다고 한다.

About : 봉오동 전투(鳳梧洞戰鬪)는 1920년 6월 6일~6월 7일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洪範圖), 최진동(崔振東, 일명 최명록(崔明錄)), 안무 등이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 한경세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 남양수비대 예하 1개 중대와 싸운 전투이다. 병력은 교전 당시 대한북로독군부 소속 한국인 독립군은 천 2백여 명이었고, 일본군은 5백여 명 정도였다. 삼둔자 전투에서의 패전 이후 일본군 제19사단은 병력을 출병하여 간도 내의 독립군단 토벌에 나선다. 1920년 6월 7일 북로 제1군 사령부(간도국민대) 부장 홍범도는 군무 도독부군, 국민회 독립군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고 봉오동 골짜기 인근에 포위진을 짜고 제3소대 분대장[3] 이화일을 시켜 일본군을 유인해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소나기가 내리쳤고, 일본군 부대는 선봉으로 올라가던 일본군 부대를 독립군으로 오인하여 사격을 가하면서 교전했다. 고지 꼭대기까지 올라간 홍범도 부대는 이를 내려다보고 남은 일본군에게 사격을 가했다. 6월 7일 오후 1시쯤, 일본군이 봉오동 상동(上洞) 남쪽 300m 지점 갈림길까지 들어오자 홍범도는 신호탄을 올렸다.[4] 삼면 고지에 매복한 독립군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봉오동 전투는 3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사상자가 늘자 월강추격대대는 도주하기 시작했는데, 강상모(姜尙模)가 2중대를 이끌고 쫓아가 다시 큰 타격을 입혔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무부는 봉오동 승첩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전사한 반면 아군은 불과 4명만 전사했다고 발표했다.[4] 상해임시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 측 피해는 전사자 157, 중상 200, 경상 100명이며 독립군 측 피해는 전사자 4, 중상 2명에 불과했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 북로독군부군은 청산리로 옮겨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하여 청산리 전투를 전개해 나간다.